[역경의 열매] 박종순 (15) 매서운 추위 넘긴 충신교회, 봄이 찾아오다

입력 : 2019-10-16 00:00:00



박종순 목사가 1988년 6월 5일 서울 용산구 충신교회에서 열린 ‘3만명 초청 큰잔치’에서 설교하고 있다.


목회에는 사계절이 있다. 언제나 따뜻한 봄날일 수 없다. 기쁨이 있으면 반드시 아픔이 따라온다. 몸을 펼 수조차 없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목회다.


목회 사계절에는 지혜가 담겨 있다.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오는 가혹한 시절도 끝난다는 사실이다. 목회가 순풍에 돛 단 듯 잘 되다가도 강추위가 찾아오고 그러다 봄으로 바뀌기도 하는 법이다. 간단한 사실 같지만 체험한 목회자만 이해할 수 있는 진리다.


그런 면에서 나는 충신교회의 한겨울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낙담하지 않았다. 교회가 아픔 속에 있다면 목사는 극복할 길을 여는 선장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너지면 교회는 끝이다. 상처받은 영혼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만다. 이는 목사에게 가장 큰 죄다.


지난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선교사가 참여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그곳에 강사로 갔다.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 서서 2시간 동안 메시지를 전했다. 주제는 ‘사명과 결단’이었다.


“여러분, 힘든 선교 현장에 계십니다. 외로우시죠. 하지만 누가 선교지로 가라고 떠밀었나요. 스스로 온 길입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겁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이 자리에 온 만큼 소명에 책임을 지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위로보다 책임을 강조했다. 귀에 편한 말이 몸에도 좋은 건 아니다. 우리교회 부목사들에게 강조했던 말도 있다. “낙심하지 말고 포기도 말고, 성공하더라도 건방 떨어서는 안 된다. 힘들 때도 주님의 일, 잘돼도 주님의 일을 대신하는 목사일 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라.”


교회 건축을 마치자 또 다른 어려움이 줄을 섰다. 빈약한 재정도 문제였다. 1979년 어느 날 당회가 열렸다. 한 장로님이 발언권을 얻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 동네 땅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교회 본당과 붙어 있는 부지 일부를 매각해 부실한 재정을 확충하길 제안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동부이촌동에 한 기업의 본사가 입주했다. 그 회사의 홍보 책임자가 어느 날 교회를 찾았다. 용건은 우리 교회 벽면에 회사 광고판을 붙이고 싶다는 거였다. 적지 않은 사용료를 준다고도 했다.


사실 이런 제안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재정이 문제라면 교회가 잘 성장하면 됩니다. 이외의 방법을 사용한다면 교회라 할 수 없죠.” 정답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찾아가는 길은 오로지 목사가 개척해야 했다.


동부이촌동을 누비며 전도했다. 막무가내로 한 건 아니었다. 전도대는 CCC의 사영리와 14만6000명을 전도한 제임스 케네디 목사의 전도폭발 훈련프로그램으로 무장시켰다. 훗날 총회 전도부장을 할 때 충신교회 전도대를 훈련시켰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78년 새 성전을 완공한 뒤 충남과 강원도에 교회를 세웠다. 80년과 81년에는 각각 스웨덴과 케냐에 선교사도 파송했다. 어렵던 시절에 했던 일들이었다. 목회 멘토인 한경직 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랐다. “교회 재정이 부족해도 선교를 해야 합니다. 교회는 쓸 게 없어도 교회 개척해야죠.” 한 목사님의 소신이 이랬다.


헌신은 결실로 돌아왔다. 교인과 예산 규모가 빠르게 늘었다. 1000석 정도 되는 본당이 교인으로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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