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36)] 이빌립 서울 열방샘교회 목사

입력 : 2019-05-15 00:00:00



이빌립 서울 열방샘교회 목사가 지난 8일 구로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전에 걸린 십자가를 보니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교회와 선교사는 악마 같은 존재라고 배웠거든요. 찬송가는 장례식장에서나 들을 법한 노래 같았습니다. 귀를 틀어막으며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 생각했었죠.”


1999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넘어온 26살 청년이 처음 접한 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20년 지난 지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빌립 서울 열방샘교회 목사를 지난 8일 구로구의 교회에서 만났다. 그가 탈북할 때 북한은 5년 가까이 자연재해가 지속돼 수만명이 굶어 죽었다. 하지만 업무차 방문한 중국의 상황은 너무 달랐다.


그는 “시장에는 음식이 넘쳐났고 개조차 고기를 입에 물고 다니는 모습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사상과 정권이 가장 위대하다고, 어떤 외세의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자랑하던 북한의 지도부와 체제가 허구로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고향을 등졌다. 탈북 후 중국 현지 동포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반갑게 맞이하며 그가 머물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예배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예배를 피해 다니다 어머니뻘인 한 집사가 자신을 위해 금식기도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방랑자일 뿐인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기도한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시 예배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장송곡으로만 들리던 찬송가 91장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란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성경도 읽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눈물의 회개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성령 충만의 기쁨이 찾아왔다.


2002년 한국으로 와 총신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한국사회와 교회공동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방황도 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탈북민을 위한 교회를 세우란 마음을 주셨다.


그는 “당시 왜 나를 부르셨냐는 울부짖음에 주님은 ‘너는 그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라고 답하셨다”고 고백했다. 2004년 9월 전도사 신분으로 교회를 개척해 2014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탈북자가 세운 최초의 한국교회로 지금은 130여명의 성도를 섬기고 있다. 북한 출신은 60% 정도다. 남과 북의 성도들이 처음부터 하나 되기란 쉽지 않았다. 문화 충돌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았다.


이 목사는 성도들에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가 배워야 한다고, 예수의 사랑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예수님께서 찾으셨던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마음으로 북한 동포를 봐주길 바란다”며 “이들이 올바른 신앙 가운데 바로 서고, 통일 시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크리스천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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