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6) 유학의 꿈으로 주경야독.. 발목 잡힌 50만원

입력 : 2019-05-15 00:00:00



1954년 인쇄소 직원들이 교과서를 점검하고 있다. 여운학 장로는 1955년 민교사 편집부장으로서 중고등학교 검인정교과서를 만들었다. 국가기록원 제공


편지는 미국 앨마칼리지 학장이 보낸 친서였다.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고 자기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통학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4살 아래 여동생의 생계문제가 걸렸다.


그때 외사촌 형이 찾아왔다. “50만원만 마련해주면 1년 안에 원금을 상환하고 네가 미국유학을 마치고 올 때까지 어머니를 잘 보양해드리마.” 한국대학 동급생 중에 YMCA에서 일하던 위성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 사정을 듣더니 자진해서 50만원 수표 한 장을 끊어줬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서 밝고 현명했다. “여형, 이 돈은 하나님께서 도와주라 하셔서 주는 것이오.” 나는 당시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거짓 없는 진실임을 믿었다.


그는 1953년 단행된 화폐개혁 때 환금관계 일을 담당하면서 거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나는 당장 외사촌 형에게 그 수표를 전해줬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추산하면 1억원이 넘는 거금이었던 것 같다.


미국 유학의 꿈으로 황홀한 나날을 보내며 주경야독했다. 낮에는 민교사의 편집업무에 바빴고 밤에는 대학 영문과에 나가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운 구름이 내 인생에 몰려왔다. 외사촌 형이 대전에서 사업을 하다 원금까지 날려 먹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위성만씨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찾아 왔다. “홍콩의 국제 사기꾼에게 너무나 큰돈을 사기당했소. 내가 빌려줬던 돈을 당장 갚으시오.” 그는 나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미국 유학은 고사하고 친구가 조건 없이 영수증도 받지 않고 빌려준 거금을 돌려주는 문제로 천릿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피가 말랐다. 내가 애태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민교사 영업부 김모 차장은 나보다 연장자였다. 자기 일같이 생각하고 민교사와 거래하던 지업사, 인쇄소, 제본소의 대표자들을 설득해 그 큰돈을 조건 없이 빌려왔다.


큰 어려움은 해결됐으나 어머니를 보살피는 문제로 미국행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마침 교과과정 개정이라는 큰 과제를 앞두고 민교사의 전무와 상무 2명이 동시에 사표를 냈다. 사장을 골탕 먹일 작정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장은 그들의 사표를 일괄 수리해버리고 모든 책임을 내게 맡겼다. 1955년 당시 22세 때의 일이다.


3년 동안 많은 일을 도맡아 하며 민교사의 편집부장이라는 직책을 받게 됐다. 전무, 상무가 하던 일을 홀로 감당하며 중·고등학교 교육개편에 따라 전과목에 걸쳐 새 검인정교과서 저자 발굴, 계약, 집필 추진작업에 몰두했다.


서울 종로2가 계림빌딩 4층 민교사 사옥에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많은 아르바이트생이 회사 뒤편의 여관에 합숙하며 수시로 사무실을 왕래했다.


중·고등학교 검인정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사는 50~60개가 있었다. 그들은 단합이 잘 돼 큰 수익을 챙겼다. 당시 민중서관 을유문화사 같은 주식회사 규모의 출판사는 오랜 전통이 있어 투자 규모도 큰 편이었다.


그런 곳에 비하면 민교사는 작았다. 나 혼자 실무를 책임지고 모든 과목의 검인정교과서에 도전했다. 당시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나 정직과 성실, 부지런과 열중에 대한 긍지는 컸다.


문교부에서 검인정 합격 여부를 발표하는 날 희비가 엇갈렸다. 민교사처럼 검인정 합격도서 숫자가 많고 영어 수학 지리부도 같은 실속 있는 과목이 전부 합격한 출판사는 많지 않았다. 민교사는 단숨에 민중서관과 함께 교과서 출판에서 쌍벽을 이루는 출판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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